건 퍼레이드마치를 볼 때마다 드는 느낌이랄가.. 그 두근두근한 기분이 떠오른다. 짝사랑을 하는 느낌. 바라만 봐도 행복한 느낌. 그런 느낌... 특히 그 애니에 나오는 히로인 중 한명인 "마이"는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이와 닮은 것 같다. 음.. 아니,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라만 봐도 흐믓해지는 것을 보면... 어느쪽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때는... 그 대상을 바라본지는 꽤 오랜시간이었다. 지금이야 벌써 4년도 넘은 세월이 지나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애인은 있는지, 무엇이 되고싶어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지만.. 아직도 떠오르고 간간히 생각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좋아해왔고, 좋아하나보다. 이런게 남자가 첫사랑을 한 상대는 잊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비록 짝사랑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 달콤한 시기.. 나를 바꾸어놓은 시기는 중학교 때였다. 벌써 꽤나 오래전 일이다. 10년 전의 일인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가. 그런대로 책을 좋아했지만 그만큼 장난기가 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당시 모습은.. 그런 나한테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던 그녀의 모습이 꽤 신기했었다. 쉬는 시간에도 문제집을 풀거나 책을 읽었던 것 같고... 매 시간마다 말 그대로 모범생의 모습이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아마도 이러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던 첫 씨앗일지도 모르는 대화.. "넌 왜 그렇게 쉬는시간에도 문제집을 풀어?" 였던가? 그것과 비슷했던 말을 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답변은 기억이 나지 않고... 그런일이 있은 후 나는 그녀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모방이라... 모방이란 단어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따라하며 나의 모습을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 결과 당시 성적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중학교 첫시험이 전교 150등인가 그랬는데, 중2때에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던 것 같다. 꽤 만족해 했었고 한때 3등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녀와 비슷한 대열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고, 공부에 대해서도 그녀와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이야기할 수 있는 꺼리도 생기고 비슷하다고 해서 좋아했다..
중1,2 때 같은반이어서. 얼마나 같은 자리에 앉아봤으면 했는지 모른다. 내 기억에는 단지 한번뿐이었지만.. 그런 적이 있었다. 일주일간이었지만.. 그때는 뛸듯이 기뻤다. 그 기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기억도 없다.
때때로.. 공부를 하러 독서실을 갈때면 가까운 독서실을 냅두고 먼 곳의 그녀의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독서실까지 가서 공부하곤 했었다. 이유는.. 그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근두근한 마음에...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기뻤다.
중3때... 쉬는시간마다 나는 내 친구네반에 놀러갔다. 내가 있는 층이 3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석의 반은 4층.. 그녀석 반 바로 옆반에 그녀가 있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하는 척 하며 가끔... 복도를 지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것을 바라며 올라온 것이다.
중3 후반.. 그녀는 외고로 가기로 했다고 들었다. 내 성적도 2, 3학년 때의 것이라면 과고도 생각해볼 수 있었으나 중1때의 성적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외고도 생각해봤었지만.. 가능했지만 중3 담임이 말렸다. 나는 이과쪽 체질의 사람.. 이라고 해서였다. 그곳에 가서 이과로 다닐 생각도 해봤었지만, 용의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나을 것이라는 말도 어디선가 들려서 그대로 지역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후론..... 잠시간 그녈르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면서 나는 그녀를 생각했었다. 고1때.. 열심히 공부해서 top이 되자. 그래서 전교1등을 하면 그녀를 만나러 가서 고백하자.. 라는 우스운 생각도 했었다. 뭐.. 농담반 진담반이었지만.. 전교3등으로 들어간 내 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말이 전교 3등이지, 여기까지 사람 수만 해도 20명 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고1때의 성적은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일 뿐 나아지지는 못했다. 고1초에 친하게 지내던 나와 비슷한 꿈을 가졌던 친구가 학교를 자퇴하고, 같이 고등학교에 진학 같은반까지 된 친한 친구가 공고로 전학가버리는 등의 일이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날라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었기 때문에.. 그쪽 중학교에서 온 알게된 친구가 말해줬다.)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 나 자신의 성적과, 첫 고등학교 수학시험에서 망친 수학시험에 대한 공포감.. 이것은 계속 나를 옳아맸다. 수학시험에 대한 공포감은 아직도 그렇다. 대학에 와서도...
고2가 되었을 때.. 고1때의 좋은 선생님과는 달리 학생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어보이는 분이 담임이 되었다. 게다가 모범생이라 생각했던 나의 뺨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때렸다.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학기초에.. 수업 외에는 주식에만 몰두하던, 10년만에 처음 담임을 맡는다고 들은 선생님이셨다. 그에 대해서 나는 매우 화가났었고, 내내 공부에 몰입했다. 자율학습시간 내내 음악테이프를 귀에 꼽고 공부에만 몰두했다. 다른 것은 잊었다. 그런식으로 공부해서 나는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1등을 달성할 수 있었다. 총 2개인가 3개인가 틀린 것으로 기억한다. 나 자신도 놀랬다. 그러한 나 자신에.. 그때부터 담임도 나에대해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놀랬다. 고1 담임 선생님은 고1때의 노력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이라고 좋아하셨지만, 나도 기뻤지만 꼭 그렇지는 못했다. 해가 짙어 밝을 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나의 마음의 한켠은 어두웠다. 공부에 몰두하게 된 원인은 뺨을 맞은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소문은 들을 수도 없었고... 그렇게 나는 잊어가게 되었다. 아니,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성적은 완만하게 떨어져갔다. 자신감도 잃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3이 되었다. 하교길에는 근처학교에서 나온 고등학생들이 많이 걸어가고 있었다. (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근처에는 다른 고등학교도 많았다. 바로 도로건너 여러개가 있으니까.. ) 그러다가 우연히, 많이 본 얼굴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했지만 분명 그녀와 매우 비슷했다. 이상해하며 집에 갔다. 그 다음날... 나는 그녀가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고등학교에 외고에서 공부하다 (내신...때문에) 우리학교로 전학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와 같은 케이스로 그녀도 전학왔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한쪽 마음은 기뻤지만, 다른 한쪽 마음은 어두웠다. 수능 점수는 내신점수만큼 나오지도 못했고, 이 상태라면 내가 원하는 과는 절대로 바라볼 수 없었고.... 말 그대로 될대로 되라였다. 다만 한가지 낙이 있었다면 아주 가끔, 하교길에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몇 초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지만 그 외의 것은 그대로였다...
수능 후... 나는 고3 담임에게 어떠한 일로 마음이 상처라고 할까.. 아직도 내 속 깊이 박혀있는 가시 하나를 찔리게 되었다. 그게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가시 하나.. 그와 함께 들리는 그녀의 풍문은, 시험을 망쳤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그 이외의 것은 전혀 모른다. 알 수 없었다. 단지 아쉬워 할 뿐...
사진.. 내 중1, 2 때 사진에는 그녀의 모습이 몇 번 나온다. 입학식 때 내 근처를 지나가는 모습.. 그런 모습들.. 지금 무엇을 하며 살까?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단지 net에서 뒤진 그녀의 이름은 너무나 흔하고, 찾기 힘들었다. 인터넷과 관련없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도 그녀를 당당히 만날 모습도 못되는 패배자의 모습일 뿐이다. 자아존중감도, 의미감도, 성실성도 이제는 없는 그런 인간이 되어있을 뿐... 항상 겁을 내며 도망가기에 바쁠 뿐이다.
.. 나는 과거에 만났던 친구들을 많이 잊어버렸다. 친한 친구였던 것 같은데도 이름은 커녕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 자신이 무서울 정도다. 내 과거의 기억을 생각하기 싫어서 였을까? 아니면 공부에만 몰두해서 그만큼 옛 기억들이 지워진 것일까? 과거 기억이 희미해져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다. 왜 내 중학교 졸업 후 기억은 이렇게 회색빛이 되어왔을까..?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내 세계 안에서 홀로 있을 뿐이다. 홀로 살아갈 뿐이다. 그럴뿐..
이상한 것은.. 당시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에게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냐느니, 학교에서 톱3에 드는 여자가 있었냐느니.. 다 남자가 그러지 않았냐느니 하는 반응이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약간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대상이 나 자신일 수도 있을테니.. 뭐, 나를 기억해주지 않아도 상관없긴 하지만. 기억해준다 해도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 나는.
...그런 모방시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때처럼 성실하게 공부하고 싶어지고.. 닮아가고 싶다. 그런 모습이 건퍼레이드 마치에서 마이의 모습에도 녹아져있다. 서로 같은 그림을 보고도 각기 다른 해석을 하며 자신의 경험에 따라 느끼게 된다는 바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요즘 윙건담 Tv판을 보고 있다. 거기서 발견한 재미있는 장면 하나. 윙건담 제작자의 애교어린 장난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정치적 관점에서(?) AMD 등의 견제 세력에 의한 뒷거래가 있는 것일까? 또는 장면이 폭파 장면인 만큼 비싼 인텔 CPU는 제거했다는 뜻?
그건 그렇고, 이 미사일 유폭장치는 어찌보면 참으로 간단하게 만들어져 있다. 단순히 데스크탑 케이블 같은 녀석을 빼면 폭파 과정이 멈추게 되니까 말이다. 누구나 쉽게 제작하는 자폭장치 - DIY 패키지라도 되는 것일까?
음.. 그런데 저 위의 빨간 버튼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 한번 눌러보고 싶다. 혹시 파워버튼? 그렇다면 기기의 안전을 위한다면 케이블 선을 뽑을 것이 아니라 저 빨간 버튼을 5초간 눌러주는 것이 옳은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케이블선 뽑다가 합선 등에 의해서 회로 이상으로 당장 폭파가 될지 알 수 없으니까.
프로그래머써 활동할 수 있는 나이는 40대를 넘기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왜냐면 이쪽분야가 끝없이 변하고 있고 발전하니까 이것을 계속 받아들이고
공부를 해야하니까... 그러한 측면에서 머리가 쌩쌩 잘도는 젊은이가
나이많은이보다 더 잘할게 뻔하니까...
그러면 프로그래머들은 30대 후반이 되면 다 잘리냐.. 하면
그것도 아닌게, 이정도 나이가 되고 경력이 쌓이게 되면 팀장급 이상의
위치에서 '관리자'나 '기획자'가 됩니다. 즉, 어떻기 전체 틀을 짤지를
설계하고 관리하고 실제 코딩은 젊은 아랫사람들에게 맞기는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는 비컴공과 출신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올 정도니까요.
컴퓨터 교사.. 제가보기에는 좋은 직업 같습니다. 뭐랄까. 저는 워낙 회사란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경쟁의 축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그런
지 몰라도 둘을 비교하라고 하면 이쪽을 더 선호합니다. IT분야는 매우 빨리 변하고
그만큼의 속도를 따라잡아 공부하지 못하면 뒤처지게 되고 적응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에 쓴 것 처럼 경력이 쌓이면 관리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비해서 교사쪽에서는 좀 이러한 것이 덜합니다. 물론, 다른 과정 교사들보다는
공부를 꾸준히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뭐.. 수학교육과 같은 곳은 처음 교사 되었
을 때와 퇴직할 때와 비교해서 새로 배워야 하는 전공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
해보면.. )
그리고 정컴교사자격은 실업계열입니다만, 실제 임용고시를 본 후 배치는 인문계,
실업계, 농공 어느 곳에 배치받을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교수님 말에 의하면 인문
계로 배치받을 것이라고 말하셨지만.. 그럴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3자리수의 TO가 나는 것입니다.
실력문제라면... 일단 졸업하면 상관없다! 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학교 컴공과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분명 서울공대의
컴공과는 우리나라 컴공과 중에서 상위 클래스에 들며(최상위는 아닙니다.) 세계에서
잘나가는 교수진들이 있습니다. (유명한 분 많습니다. 캐시설계에서 유명한분,
알고리즘에서 유명하신 분, DB계에서 유명하신 분.. 그런 분들한테 수업듣습니다.)
이 말은 곧 이정도의 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 수업들의 레벨은
단순히 인문계든 실업계든 농고든 가르치기 위해 배우는 수준을 훨씬 상회힙니다.
기존 우리나라 서적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정도지요. 곧바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대개 XX교육과에서는 XX교육과 내에 전공교수가 따로 있어서 중급 정도까지만 가르
치고 그 이상까지는 나가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가르칠 수 있을 정도보다 약간 높은
수준'정도랄까요. 이쪽 출신과 우리쪽 출신을 비교한다면 어느쪽이 더 완성도 높은
지식을 가진 것일까요?
추가로 교사가 퇴직했을 때 연금 나오는 것 등, 노후까지 생각한다면
이쪽 공무원 계열이 얼마나 무서운 직업이란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될꺼라 생각합니다 -_-
한번 주위 사람에 그런 분 있으면 한번 물어보세요.
교사 직업이 있을 때 수입이 해가 갈수록 일반 직장인보다 비교될정도로 적은 것은
분명하지만... 퇴직 후는 상당합니다.
■ 치우의 졸업논문!
그리고 치우가.. 졸업논문으로 과정 커리큘럼 재편성 뭐 이런걸 할테니까,
이번년 졸업할테니 내년에는 쓸만하게 잡힐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