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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7. 11:53
리눅스가 표방하는 오픈 소스의 철학은 간단했다.
-모든 정보(이 경우엔 운영체제의 소스 코드 혹은 기본 명령어를 말한다)는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제공된 정보를 향상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든 그것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향상된 정보 또한 무료로 배포되어야 한다.
머리말

삶 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는 삶의 몯느 것을 위한 자극 요소들이지요.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생물이 하는 모든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라고 보면 됩니다. 그 첫번째는 '생존(survival)'이고, 두번째는 '사회조직(social order)', 세번째는 '오락(entertainment)'입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진보는 방금 말한 순서대로 진행된다고 보면 됩니다. 오락 다음엔 아무것도 없지요. 그러니까 결국 어떤 면에서 보면, 삶의 의미란 곧 세번째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세번째 단계에 도달하면, 할 일은 다 한 거지요. 하지만 첫번째, 두번째를 건너뛰고 세번째 단계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p18

그러니까, 만약 삶이란 게 모두 그러한 진행에 대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삶의 목표는 당연히 그러한 진행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되겠지요. 여기서 말하는 진행은 하나의 단일 진행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많은 진행의 부분이 되는 거지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자문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회의 일원이니까요. 사회는 분명 아까 얘기한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가 그 방향으로 우너활하게 나아가도록 이바지할 수 있겠지요.
p24

사람에 따라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다르다. 자신이 몰았던 차를 가지고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사했던 일, 살았던 장소, 사귀엇던 사람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컴퓨터로 과거의 시간을 기억한다.
p73

우수한 게임이란 뛰어난 스피드에, 뛰어난 그래픽만 갖춘 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게임을 하도록 만드는 '무엇', 한번 시작하면 손을 뗄 수 없게 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중략) 하지만 게임에 있어서 '진보'는 스피드 향상으로만 귀결되곤 한다. 팩맨에서처럼 말이다. 때때로 미로를 변형시키고, 게임 플레이어를 더 빨리 따라오는 괴물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p85

사 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책 한 권 정도는 지니고 있다. [성경], [자본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등등 말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삶의 의미에 대한 나의 철학이 담긴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의 삶에 보탬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책은 앤드류 타넨바움의 [운영체제 : 디자인 및 실행] 이었다.
(중략)
책을 읽으며 차츰 유닉스를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커다란 열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솔직히, 한번 일기 시작한 그 열정은 그 이후 잦아들 줄을 몰랐다. ( 이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당신에게도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p92

간 편한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함'이 절대적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인가를 설계할 때는 '단순함'이 가미되어야만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탄생할 수 있다. 다시 인간의 언어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어 같은 상형문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단순화' 되는 반면, 구성요소 접근방식은 훨씬 더 추상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유닉스의 단순함을 정교함의 부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단순하기에 정교해질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유닉스가 기본적으로 정교한 무엇인가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컴퓨터의 많은 다른 프로그램들처럼, 유닉스는 게임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었다. PDP-11에서 우주전쟁 게임을 즈릭고 싶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데니스와 켄이 처음 유닉스 개발에 착수했던 것이다.
p97

나는 그 성과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
사라는 나의 개인적인 이 위대한 성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그녀가 약 5초 동안 AAAAAA과 BBBBBBBB만이 가득한 스크린을 보더니 말했다. "좋은데." 그리고는 끝이었다. 그녀는 나의 이 새로운 업적에 별 감동을 받지 않았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뒤에 자리하고 있는 이 엄청난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이에게 내가 거둔 성과는 타르로 도로를 가득 메운 뒤, 그 도로를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p107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세상을 창조하는 것을 가로막는 유일한 방해물은 컴퓨터의 성능과 (컴퓨터의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됨에 따라 점점 비중이 커지고 있는) 컴퓨터 사용자의 조작 능력일 뿐이다.
p121

컴퓨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닐 때까지 맹목적으로 문제에 매달릴 수도 있고, 나름대로 적합한 접근방식을 찾아내어 갑자기 문제가 사라지도록 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규칙에 연연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당신이 '잘못된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깨달음 말이다.
p124

일 반적으로 말해, 나는 두 가지 입장에서 저작권을 바라본다. 만약 월 수입이 50달러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과연 250달러짜리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이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5개월 생활비를 털어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저작권 침해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있는 저작권 침해자를 뒤쫓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비도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리눅스에 있어, 자신이 사용할 의도에서 GPL을 어겨가며 리눅스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누군가 간단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생각에서 리눅스를 이용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 사람이 미국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돈을 벌기 위해 마음대로 리눅스를 훔치는 것은 정도가 어떻든간에, 분명 비도덕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탐욕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p154

사 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잠자고, 식사하고, 학교 가고, 코드 개발하고, 수많은 이메일을 읽는 것이 내게는 생활이었다. 물론 주변의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다양한 사생활을 즐기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나름대로 내 생활을 즐겼다.
  솔직히 나의 친구들 역시 대부분이 패배자였다.
p183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잠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베개라도 던지고 싶다. 잠이 중요하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아주 완벽한 근거가 있으며, 나는 전적으로 그 근거를 지지한다. 만약 하루에 열 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다면, 생산적인 시간인 낮 시간을 몇 시간 정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깨어 있는 몇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에 당신은 맑은 정신으로 일할 수 잇고, 당신의 머리는 완전히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p220

언론은 리눅스 사용자 간에 이상주의자와 실용주의자(물론 나의 용어는 아니다!)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조장했다. 그러한 이분법적 논리대로라면, 리눅스의 이상이 자본주의 목표와 양립할 수 없음을 두려워한 스톨먼과 몇몇 사람들은 이상주의 지지파이고, 나는 실용주의 지지파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이분법을 언론이 조장한,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나누려는 극단적인 논리라고 생각했다.(그것은 리눅스 현상을 리눅스 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쟁으로 파악하려는 견해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리눅스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 훨씬 더 폭럽은 '그 무엇'이다. 즉 기술과 지식, 부, 재미를 상업 세계에서 가장 유기적인 방법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p241-242

어쨌든 나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오픈 소스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재미'였다. 재미는 즐기는 방편으로서 오픈 소스를 생각했으니, 분명 이상주의적인 견해는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항상 이상주의자들을 재미있지만 다소 따분하고, 가끔씩은 무서운 사람들로 생각한다.
p243

이제 나의 황금률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첫 째는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해주길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어라."이다. 그 법칙을 따른다면,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항상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라."이고, 셋째는 "재밌게 하라."이다.
p261

나 는 사람들이 나를 전화나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 모두에게 응답하는 것을 즐기는 호인으로 생각하길 바란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잣대로 삼고, 나를 돈에 무관심한 이타적인 수도승이나 성자로 판단하는 게 이상하다. 나는 그 신화를 깨기 위해 몇 년 동안이나 애썼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활자화된 적은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언론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타적인 수도승의 이미지를 항상 혐오해 왔다. 그것은 참신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도 따분한 이미지일 뿐이다. 게다가 그것은 진실도 아니다.
p274

사 람들은 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많은 것들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리눅스 뚜껑의 장신구로서 몇 년을 보내면서 배운 교훈이 하나 있다면 , 더 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강박을 기필코 확신시켜야만 만족한다.
  이런 사람들은 실로 내 삶에서 가장 짜능나는 대상 가운데 하나다.
p277

그 런데, 그들은 왜 뜻이 통하는 자기들끼리 노는 데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누구든 자기 견해를 타인에게 개진할 수는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자기 견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면 그로서는 할 일 다한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사람들이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경우다. 나는 내 개인적 결정에 이런저런 강요나 간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실로 경멸한다. (아마 아내는 예외가 될 것 같다.)
p282


풍차와 싸우는 건 쉬운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는 말이다.
p290

예를 들면, 저작권 소유자는 단지 그것을 파는 것보다 훨씬 재미난 일들을 벌일 수 있다. 라이센스를 내주는 게 그 중 하나다. 저작권에 대한 라이선스를 내주는 게 저작권을 파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다. 작품을 파는 대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떤 일을 하도록 허가만 내주고(그것에 대한) 저작권은 여전히 소유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꿩 먹고 알 먹고'가 바로 이 런 경우다. 잃는 것 하나 없이 뭔가를 사용할 권리를 끊임없이 판다?! 우와! 그래서 이 땅에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재산권을 소유하길 '갈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 이제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는가? 아직도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에게 오라. 내가 다리 하나 지어놓고 강가의 경치를 감상하는 라이선스를 팔 테니..
  지적재산권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소유자는 실질적으로 어떤 것도 잃지 않고 그것을 영원히 효과적으로 팔 수 있다.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도 없고, 사실 작품에 어떤 하자가 있을질라도 그것에 책임지지 않는 방법으로 라이선스를 내줄 수도 있따. 라이선스 계약 시 그저 몇 줄 명시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정말 뭘 모르시는구먼. 게다가 소비자 보호 문제 따윈 안중에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저작권 소유자는 잃는 것 없이 그의 재산을 팔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재산처럼 보이는 것을 파는 사람들까지 고소할 권리가 있다. 분명 저작권 소유자는 (그의 창작물에 대해서뿐 아니라) 파생된 작업물에 대한 권리까지 소유한다.
p298-299

성공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게 아니다.
문 제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너무 탐욕에 끌려다닌다는 점이다. 그런 탐욕은 언제나 궁극적으로 실패를 안겨다준다. 탐욕에 이끌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개 편집증 환자처럼 모든 걸 다 통제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결정은 근시안적인 데다가 해롭고, 거의 언제나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p308

생존이 어느 정도 보장된 사회에서 돈은 가장 큰 동기부여 요인이 아니다.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할 때, 즉 일을 즐길 때, 가장 그 일을 잘 해낸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얘기이다. 이는 작가와 예술가, 연예인, 엔지니어 등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오픈소스 모델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 속에서 열정을 행동에 옮길 기회를 주었다. 회사가 고용한 몇몇 사람들이 아닌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일하며 재미도 볼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길 원한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의욕을 북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p324

기 술은 기술이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지금까지는 본질적으로 그리 대단한 게 못된다. 기술은 단지 그것을 갖고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흥미로운 대상일 뿐이다. 뒤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인간의 필요와 관심이라는 얘기다. 오늘날 우리는 통신 수단이 있기 때문에 통신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래 수다스럽고 서로 의사를 소통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통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단이 없다면 만들어낼 것이다. 노키아는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내 주장은 이렇다. 사회가 어디로 진화해 갈 것인지 이해하려면 무엇이 진정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돈? 성공? 아니면 섹스? 근보적으로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일까?
(중략)
  그리고 그게 다다. 생존, 사회적 질서 내에서의 위치, 그리고 오락, 이 세가지가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인 것이다. 기타 다른 것들은 모두 사회학자들이 출현행동이라 부르는 것들로, 위의 간단한 규칙들에서 파생되어 나타나는 행동유형들이다.
  하지만 난  "이것들이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입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끝내지 않겠다. 만약 여기서 끝난다면 특별히 삶의 이론이라 할 것도 없다. 이것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세가지 요인이 모두 보편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고, 그 질서는 삶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발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단지 우리 인간만 이 세 가지에 의해서 동기를 갖는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도 적용되고, 생성과 발전, 소멸 과정을 가지는 어떤 종류의 행동 양식에든 자연적 진보 과정으로 나타난다.
  생존하라, 사회하하라, 즐겨라.
  그것이 진보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재미로"를 이 책의 제목으로 택한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충분히 진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우리의 즐거움을 위한 게 된다.
p344-346
posted by prog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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