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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것에서 벗어나 재미난 것 속으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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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8. 22:06 책/리뷰


양천도서관에서 호기 심삼아서 빌려본 책. 그런데 정말로 기분이 매우 유쾌해질만큼 내게 있어서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무래도 나는 천재들이 잘난척하면서 나대고 다니고, 그 옆에서 찡겨살면서 한숨쉬는 평범하지만 어느정도 정의심을 가지고있는 그런 관계의 주인공들이 나타나는 소설을 참 좋아하나보다. 성계 시리즈라던가, 모든 것은 F가 된다던가 하는 책들을 봐도 그렇고. 니시오 이신. 이 사람이 쓴 다른 책들도 읽거나 없으면 요즘 수입이 썩 없는 관계로 양천 도서관에 신청해 넣어야겠다. 간만에 두근두근한 느낌이다. 요즘 NT노벨들에 대해서 식상함을 느끼고 마땅히 재미를 못느끼고 시들어가고 있었는데 말이지...!

다음은 소설 도입부에 있던 부분의 글. 뻔한 내용이지만,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건 천재란 어째서 존재하며, 또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문제야. 무능하다면, 엄청나게 둔감하다면 그냥 그렇게 있는 편이 좋아. 애초부터 살아 있는 이유조차 생각하지 않을 만큼, 애초부터 살아 있는 의미조차 생각하지 않을 만큼, 애초부터 살아 있는 가치조차 생각하지 않을 만큼 둔감하다면, 이 세상은 그냥 낙원일 뿐이야. 평온하고 평화로우며 평정을 이루고 있으니까. 사소한 일이 대사건이고 대사건이 사소한 일이 되는, 축복받은 최고의 일생을 보내다 죽을 수 있을 거라고.
p.s.
그건 그렇고, 저자는 왜 이리 섬뜻한 제목을 좋아할까?
목매다는 하이스쿨이라든가 목조로는 로멘티스트라던가..
일반적인(?) 사람들은 잘 손이 안 갈 것 같다...

잘린머리 사이클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니시오 이신 (학산문화사, 2006년)
상세보기
posted by progh2
2008. 5. 27. 15:28 즐겨찾기
http://cleandiet.com

홈페이지 제목을 보면 '다이어트?'라 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알찬 도서 메모들이 가득하여
책을 사본다든가, 아니면 자신이 읽은 책과 비교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할 때 비교해 보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도서 메모 수가 1000여개를 넘으니..
어지간한 책들은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괴짜 통계학을 읽으면서
어딘가 정오표라도 -_- 있지 않을까 해서 검색을 때렸는데
이 홈페이지 주인장분의 어느 글이 검색이 되더군요.
역시 오타와 함께 생각보다 실망이 컸다는 내용.. ^^

책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한번 가셔서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progh2
2008. 5. 27. 14:19 책/리뷰

필 받아서 샀다가 이제야 '괴짜 통계학'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웬걸... 재미있기는 한데
뭔 이리 오타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편집장에 제대로 책을 읽어보지 않고
'아, 저자가 교수님이니 괜히 트집잡았다가 혼나려나?'라던가
'시간도 없고 할 일은 많으니 대충 큰 오타만 보고 넘기자.' 식으로
숫자 등에 대한 부분을 skip한 것으로 보입니다.

100만 곱하기 (1/2)^2 여기서 제곱을 (1/2)2 (1/2)30 이런식으로
^를 죄다 빼먹어서 어리둥절하게 한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다행히 아직 초반이라서 내용을 보고 뭐가 문제인지 유추가 가능합니다만
극초반부터 이러니 영 책 이미지가 '지뢰밟았나?'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면 저자가 머리말에 써놓은 것처럼
독자가 숫자에 대해 친해져서 '아~ 이것도 몰라?'하며 따지며
친해지도록 유도한 것일까요?

과연 뒷부분도 그러할지 계속 읽어봐야겠습니다.
이거.. 오타 많은거 편집장 등은 알고 있을지 의문이네요.
항믜 메일이라도 보내줘야하나.. -_-

괴짜 통계학 상세보기
김진호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 펴냄
재미있는 통계의 세계! 숫자로 들여다보는 세상의 놀라운 이치! 이 책은 도박, 점쟁이, 대선 여론조사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겪는 사례들과 통계를 접목시킨 책으로, 복잡하고 어려울 것만 같은 통계를 재미있는 숫자놀음으로 즐기도록 도와준다. 숫자와 통계에 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해주며, 독특하고 희한한 소재들을 명쾌히 설명하여 우리들의 호기심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MBC 라디
posted by progh2

책 주문한지 딱 일주일 되었다.

그런데 주문한 2권의 책 중 한 권이 재고확보중이라 발송을 못하고 있다.
그 책은 별 것도 아닌, 'GOSICK s'라는 GOSICK 시리즈 외전에 해당하는
NT노벨로 12월에 나온 것이라 구하기 쉬울텐데..

다른 책인 새뮤얼 머시기씨의 의무론도 4일째인데 감감 무소식이다.
다른 책은 4일정도 되니 배송이 되었고 나머지는 이제 발송했다.

뭐 이건 이것대로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황당한 것은 그에 관한 배송 지연 메일이다.

급하고 바쁘면 지연되고 있는 책을 취소하란다. -_-;

지금까지 여러 인터넷 서점을 써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봤다.

지연되면 일단 배송 가능한 책먼저 보내주는 것이 '보통' 아닌가?
옛날 모닝365 해피샵 시절에도 그렇게 운영되었는데.
정말 모닝365 초기시절부터 수십만원어치 책을 사봤을텐데
지금의 모닝365는 그때랑 전혀 다르다.
뭐 당연하려나.. SKT에 먹힌 이후 SKT 특유의 고객응대정신을 도입했는지도 - .-;

어쨌거나 돈빨로, 쿠폰/마일리지로 회원 가입은 죽어라 했지만
배송 문제로 모은 회원들 다 떠나가게 생겼다.
나 같은 상황의 사람이 한 둘이어야지...
클리앙에서도 보니 대문에 걸린책들 빼고는 올 생각을 안한다고 난리다.

알라딘 등은 하루 배송도 모잘라 당일 배송을 서비스 하는 판국에
베스트서적(지네 기준.. 대문에 걸어놓는 책들) 빼면 '영업일 기준' 3~5일 걸린다고
FAQ에 당당히 답변해놓은 모습이 참 대단하다.
토, 일이나 휴일을 포함하면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말 아닌가?

쿠폰, 마일리지 덕에 처음에는 책을 싸게 샀다고 좋아했지만
지금은 후회막급이다.
저런 메일이나 받을 줄 알았다면 누가 주문했을까?

옛날 모닝365에서 전날밤/아침에 주문, 퇴근할 때 찾아간다느니 하던
마케팅을 할 때가 그리울 뿐이다..
posted by progh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밤새 읽기 시작해 이 시각까지 단숨에 읽어버린 소설.
판타지 장르라고 하나 사실상 좀 맥을 달리하는 소설이다.

...읽고나서 개운치 않은 그런 스토리.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도서관에 신청해서 보게 된 이유가
책의 표지와 제목 때문이다.
무언가 다른 채널, 차원과의 관계가 있을 것 같은 제목에
뇌쇄적이고 따분하면서도 환상이 섞인 듯한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또 거기다 판타지소설대상까지 수상했다고 하니
뭔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특이한 소설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용은 상당히 달랐다.
읽다보면 카푸카의 벌레였던가? 그런류의 느낌이 난다.
불길한 운명의 순환.... 엉뚱하기도 하고 갑자기 왜? 하지만
이것은 ''운명''으로 정해져버린다.
아마 스토리 해석도 보는 사람마다 꽤 다르지 않을까 하기도 하고
분명 취향에 따른 호불호가 굉장히 심할 책이다.

나는 역시 밝고 좋은 분위기의 책이 좋다.
그래서 대부분 긍정으로 종결되는 NT노벨류의 소설을 찾게 되는 것인지도..
posted by progh2
01

제가 애용하는 양천도서관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이 곳에 가려면, 603버스를 타고 목동 5단지 C상가에서 내려서 3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이 곳에 올 때마다, 여러 수 많은 책들과
많은 사람들이 독서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종종 세상에 내가 읽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에
고마움과 그만큼 내 자신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한 몇 개월 동안 도서관에 못 갔었는데,
무인 반납/대여기가 추가되었더군요.
그래서 저도 암호를 발급받았고요.
학교 도서관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것이었지만
상당히 멋있더군요. ^^
다음에 사진이라도 찍어 와야겠습니다.

오늘 빌린 책은
CSS 마스터 전략(에이콘)
전문가로 가는 지름길2 SQL Server 2000 관리자용(대림)
땡굴이의 플래시 액션스크립트 결정적 비밀 22 (제우미디어)
입니다. 열심히 보고 스킬을 늘려야겠습니다. ^^
posted by progh2
2007. 6. 7. 11:54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 구본형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도 한층 높은 차원의 존재로 승화할 수 없다." -아난다 쿠마라수와미(Ananda K. Coomaraswamy)

" 내 안에는 치졸하고 비뚤어지고 우유부단한 못된 면들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힘을 이끌어 낸다. 나는 그것들을 바꿀 수 있다. 그것들은 힘의 원천이 된다. 내가 휘어잡을 수 있을 때, 그것들은 좋은 재료가 된다." -리처드 스턴(Richard Stern)

  아름다운 한 여인이 파리의 카페에 앉아 있는 파블로 피카소에게 다가와 자신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피카소는 몇 분 만에 여인의 모습을 스케치 해 주었다. 그리고 50만 프랑(약8천만 원)을 요구했다. 여자가 놀라서 항의했다.
  "아니,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잖아요?"
  피카소가 대답했다.
  "천만에요. 나는 당신을 그리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피카소는 자신이 사용한 노동 시간이 아니라 계발된 재능이라는 인적 자본을 기준으로 그림의 값을 매겼다. 인류는 길고 긴 역사의 대부분을 '수렵과 채취의 평등한 경제' 속에서 지내 왔다. 그리고 농경 사회가 되자 사회적 경제적 평등은 깨지고, 지주들은 사람을 가축의 일종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산업 사회로 접어들게 되자, 경영자들은 인간의 가치를 기계의 부품이나 나사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능의 가치로 평가했다.
  이제 우리는 '연결된 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지식 사회로 들어섰다. 이 사회에서도 유감스럽게, 인간은 인간 자체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게 되지는 못할 전망이다. 다만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한 사람만이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부를 가지게 될 것이다.
p19-20

  이제 노동 시장의 주도권은 인력을 구하는 기업에게 있지 않다. 오히려 직업을 구하려는 '나'에게 있다. 가치 있는 자원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고용주가 아니다. 바로 '나'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그 안에서 종사하고 있는 개인들의 능력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개인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물리적으로든 전자적으로든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었다.
p23

  선택의 기준은, 그 일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기량을 쌓을 수 있으며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가이다. 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면접을 할 때 이렇게 물어 보라. "내가 3년 간 이 회사를 위해 일했을 때, 3년이 지난 후 나의 지적 재산의 가치는 얼마나 올라 있을 것인가?" 고용주에게 면접을 당하는 대신 그대가 고용주를
면접하라. 이것이 미래를 잡는 방법이며, 미래를 만들어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한 관점은 삶과 일을 대하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정신적 태도를 만들어 줄 것이다.
p26

  실제로 미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고용 형태는 자영업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잣니의 근로 생활을 일자리로 규정하는 대신, 하나의 리스크 관리로 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리스크의 개념은 '상실할 가능성(chance of loss)'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opportunity for gain)'로 전환하게 되었다. 진정한 실업은, 지금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부를 가져다 줄 자신의 재능을 자본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p26-27

  과거를 죽이지 않으면 새로운 현실은 없다. 잃어버리면 얻을 것이다. 장님이 되어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집을 떠나라, 그러면 집에 도착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죽어라, 그러면 살게 되리라.
  장자가 이른바 "나를 잃었다(吾喪我)"고 한 것은 '참 나(眞我)'가 '껍데기의 나(個我)'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어떤 사회의 문명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거의 난파할 지경에 이르러야만 한다"고 말했다.
  나를 잃음으로써 나를 되찾는 것은 모든 지혜의 공통된 메시지이다. 개인의 혁명은 자신의 껍데기를 죽임으로써 가장 자기다워질 것을 목표로 한다. 자기가 아닌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자기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 바로 변화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 핵심을 발견하려는 열정이며, 그것을 향한 끊임없는 '움직임(Movement)'이다.
p29

  죽을 때까지 자신을 배반하지도 떠나지도 않는 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다. 하도 평범하여 자신에게 별다른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누구든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신이 허락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며, 정성을 다하고 시간을 투자하여 그것을 계발하는 일이다.
p30

 기본적으로 '변화의 기술(The Arts of Changing)'을 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술이상의 존재이다. 우리는 이성적인 존재이며 또 가장 감정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모두 사용하게 될 것이다. 논리를 따르기도 하겠지만 감성의 도움도 받게 될 것이다. 머리를 신뢰하겠지만 또한 마음에 호소할 것이다.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은 "마음은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주어진 재료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참으로 별난 기계"라고 말했다. 또한 플라톤이 한 말 역시 잊지 말자. "모든 배움은 정서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마음의 동의를 얻어낼 때 우리는 깊이 체득할 수 있다.
p31

세상 만사가 나에겐 진부하고, 짜증스럽고, 무익한 허섭쓰레기로 보이는구나. 싫구나, 참으로 싫구나. 자라서 씨앗을 맺을 이 잡초투성이의 뜰이. - 햄릿 1막 2장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때가 곧 시작이다. - 루이 라무르(Louis L'Amour)

머리가 알아내기 전에 늘 먼저 보는 것은 가슴이다.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그들은 적은 월급을 기다린다. 그거라도 없으면 먹고 살기 어렵다. 보상이 적다는 이유보다 더 사람을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 심리적으로 가치를 찾기 어려운 하나마나한 일을 하고 있다는 불만, 참신한 맛도 도전 의욕도 없는 지겨운 일의 되풀이, 상사로부터 오는 과도한 요구 혹은 자신이 한 일을 알아주지 않을 때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다. 더욱이 하는 일이 미래가 없고 기량을 키울 수도 없으며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면, 열정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시키는 일은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조직의 나사와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에 빠지고, 직장과 일의 밖에서 마음을 달래 줄 대안을 찾아 헤맨다. 인생은 퇴근 시간 후부터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라인하르트 휀(Reinhard Hohn)은 이것을 "직장인의 내면적 자기 퇴직"이라고 부른다.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은 살길을 찾아 인터넷 속의 증권가를 헤매고, 전직과 창업의 자격증의 언저리를 방황한다. 충성심을 대신할 열정과 헌신 그리고 활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에서 즐거움이 떨어져 나가면 일은 고통스럽다. 인생에 끌려 다니면 고달플 뿐이다. 인생을 몰고 다닐 수 있으려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직업화시키는 방법'이 현명하다. 세월이 흐르면 첫 번째 등급의 직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직업이든지 그 일을 아주 잘하게 되면 돈과 명예가 따라온다. 학벌이 없어도 명인과 장인이 된 사람들은 많다. 그들 역시 한때 아주 가난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세월이 그들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평균적 삶이 무난했던 산업화 시대와 '재능의 시장 가치'가 중요해진 지식 사회가 극명하게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한 번쯤 일으켜 세워, 바람직한 인생으로 가기 위한 분기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하여 그리고 아이들을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에 주제를 갖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이다. 세속적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는 헛되게 세상을 산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 해봐야 세번째 등급에 속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커다란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안도해 왔다. 예측할 수 있는 일상성 속에서 학교에 들어가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는 것에 얼마나 큰 안도감을 느꼈던가? 부모님들은 얼마나 좋아하셨으며, 친구들은 또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아 자신의 직업이 겨우 네 번째 등급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가? 우리가 가졌던 화려하고 다소 방만한, 그러나 불 같았던 욕망과 기대가 조금씩 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음을 태워 밝히던 불빛이 약해지면서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p40-42

  출발하자마자 갈림길이 하나 나올 것이다. 한 길은 훨씬 넓고 화려해 보일 것이다. 세 번째 등급의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는 길로 가는 입구이다. 그러나 그 길로 가지 마라.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 인생을 뒤돌아 보면 그저 허망해질 뿐이다.
p43

  세상이 시들해 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시들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늘 거기에 그렇게 눈부시게 서 있다.
p43

  투기꾼인 그가 생각하는 돈의 의미는 두 가지. 자유와 권력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독립적이라는 것, 즉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자유이다. 돈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편 돈이 많으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의존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나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권력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다. 소로스에게 돈은 처음에는 자유를 의미했다. 그리고 나중에 돈이 많아지니 권력도 얻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관심사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위험한 인물이 된 것이다.
p44-45

  다수의 의견에 맞선다는 것은 겸손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이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조심했으며, 불확실성 속에 존재하는 흐름을 예측하려고 애썼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따랐고 자신의 이론을 따랐다. 그는 언제나 자기 이론을 점검했고, 필요하다면 자기 생각을 가차없이 버리기도 했다. 한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던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영국 이민 시절, 그는 '생애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보내야 했다. 새벽녘까지 부자들이 술 마시고 춤추며 놀던 쿼그리노의 웨이터로 일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에 그들이 남기고 간 음식찌꺼기로 배를 채웠다. 그는 바로 여기서 배짱과 용기를 배울 수 있었따. 우리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삶에서 배운 것을 미래에 적용할 수 있다.
p46-47

<아네테의 티몬>에서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 비싸게 번쩍이는 붉은 돈? 아니, 신들이여! 이 몸이 그걸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라오. 돈은 검은 것을 희게 만들고, 낡은 것을 새롭게 하고, 비천한 것을 고귀하게 한다오. 돈은 유혹한다, 제단의 사제를.
p47-48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한다. 돈을 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비법을 배우려고 한다. 책방에 가면 그런 책들이 경제 경영서 서가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다. 그러나 속지 마라. '돈을 버는 묘법' - 가난한 사람들은 그 비방을 돈을 주고 구입하지만, 정작 돈을 버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비방을 만들어 판 사람들이다. 아쉽게도 돈은 그들의 비방대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p48

  그들은 돈이 흐르는 길목에서 기다린 사람들이며 물결을 거슬러 오른 고기들이다. 과거의 최선이 아니라 새로운 최선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때때로 악마와 같지만, 자신의 삶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p49

  열정을 가지고 평생 그 길을 걸은 사람이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아직 '자신의 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다림을 자신에 대한 신뢰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속적인 기다림을 승화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부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라 생각한다. 베풂 역시 열정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열정이다.
p50

  나이키 신발의 디자인은 공격적이다. 마치 악마의 전사가 착용한 강력한 무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것은 기존 신발의 틀에 반항하는 아웃사이더의 신발이다. 자연스럽게 어떤 정신, 즉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변명은 집어치워라"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그리고 성공했다.

  삐딱하다는 것은 무절제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 세계의 질서보다 자기 세계의 질서에 더 충실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기 세계의 존재를 가정한다.
p53

  그러므로 필 나이트를 잘 이해하는 길은 10만 원쯤 내고 나이키 신발을 사서 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영역에 의미와 철학을 집어넣음으로써 세계 최고의 직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어도 좋다.
p54


  열정은 힘이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감정이 늘 존재하는 조직이 있다. 그 속에 들어서면 우리는 곧 감염된다. 테크닉은 중요하지 않다. 배우면 된다. 가르치는 것도 쉽다.
  그러나 싸움은 90% 이상이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싸우는 법을 알고 있지만 싸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는 어떤 리더도 승리할 수 없다. 게임으로 우리를 불러들이는 것은 지식이다. 알고 있으면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승리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승리는 열정의 문제이다. 열정은 싸우기 전에 이미 승리를 결정한다. 열정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일을 연결하는 집합체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헌신하게 한다. 헌신은 누군가가 받기로 되어 있는 것 이상을 얻게 해 준다. 헌신적인 고객을 얻고 싶다면 헌신해야 한다. 일이 그대의 즐거움이 되려면, 그 일에 빠져야 한다. 열정은 열정 그 자체로 보답한다.
p67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누가 비범한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어디에 비범성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 하웓 ㅡ가드너(Howard Gardner)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그들은 같은 사람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생에 대한 태도뿐이다. 내가 아닌 남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승리하기 시작한다.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배운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내는 순간부터 그들은 화려하게 변신한다.
  자기가 모든 근본적 변화의 시작이다. 돈에 투자하면 딸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투자하면 절대롤 잃는 법이 없다.
p78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360도를 돌아가며 본다. 인생을 살며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삶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 엔디 워홀(Andy Warhol)

  그는 정보를 계속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본능적 충동이 강한 사람이다. 따라서 일정한 정도에서 문을 닫아 걸고 결정을 내리거나 판단을 내리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불안해 한다. 그는 성급한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더 나은 결정이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의 책상과 캐비넷은 언제 쓸지도 모르는 자료로 가득 차 있다. 미래의 사용을 위해 모아두기 때문이다. 늘 정리하고 깔끔하고 질서정연한 사람들이 볼 때, 그의 공간은 도깨비가 나올만큼 너절하고 지전분해 보인다.
  시간에 대해서도 매우 융통적이다. 자주 지각하고 정해진 업무의 기한을 준수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가 때때로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의무를 소흘히 해서라기 보다는 단지 매순간을 과정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여, 시간의 흐름을 쉽게 놓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결정보다는 적당한 회색 지대를 선호한다. 그는 짜여진 계급적 경직성이 강한 조직에서는 견디어 내기 어려워한다. 자유롭고 반권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p84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쫓는 긍정적인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두려움이 없다면 용기도 없는 것이다. 두려움과 용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두려움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 때문에 생겨난다. 따라서 용기는 자신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믿는 자신감에서부터 온다. 자신감은, 성공에 이르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철저함에 의해 만들어진다. 용기란 재산처럼 선조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 용기이다. 진정한 용기를 내고 키워가는 사람들 중에 사십이나 오십ㅈ므 된 분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p87

  직관적으로 자신의 길을 따르게 되었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그 방법론을 논리적으로 알려주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순간 갑자기 '신속하고 즉각적인 통찰'에 의하여 알게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의 상태에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백만장자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큰 대가도 없이 즐겁지도 않은 일들을 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하여 점점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연히,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이전 직업을 통해 직관적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헌신하게 된 것 같다.

  이러한 데이터는 아직 자신의 '천직'을 발견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위안을 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 그렇게 예외적인 일은 아니며,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고민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위안에 속으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당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덫에 빠지게 된다 좋아하는 일도 못하면서 벌이도 신통치 않은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탐구에는 끝이 없다. 이것은 세계의 변방과 오지를 찾아다니는 모험처럼 두렵고 흥미롭다. 자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배후를 읽을 수 있도록 주의하자.
  그것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조용히 놓아두자. 어떤 사회적 선악과 가치의 여과 없이 자신의 마음이 바라는 것을 직시하자. 그리고 물어 보자. 평생 그 일만 하며 살았을 때, 그리하여 그 일을 아주 잘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인생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고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 당신이 원하는 일이다.
p91-93

  그러므로 자기 계발이란, 사회나 조직이 지금 필요하다고 여기는 미덕을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각자에게는 그에 맞는 직업과 일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 계발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발하기 위해 돈과 열정, 시간과 영혼을 투자하는 것이다.
p96

  어떤 일을 하든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은 스스로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무능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격려해 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세상이 아니다. 세상을 비난하는 것은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문재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p99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들이 인생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동안에 - 세네카(Seneca)

나도, 어느 누구도 당신의 길을 대신 가 줄 수 없다. 그 길은 스스로 가야 할 길이기에. - 월트 휘트만(Walt Whitman)

  인류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이다. 평범과 비범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어떤 변화'이다. 역사가 인류 변천의 기록이듯, 개인의 역사 역시 변화의 기록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날' 모든 평범에서부터 비범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평범과 비범 사이에 존재하는 변곡점이 바로 우리가 찾고 싶어하는 포인트이다.
p108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먹느냐 먹히느냐이다.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누가 규정하고 누가 규정당하냐이다. = 토마스 사스(Thomas Szasz), <제2의 죄(The Second Sin)>

  이러한 사례는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꿈꾸는 사람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불편을 하소연할 뿐이다. 그래서 법칙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지배자이고, 그 법칙을 따라야 하는 사람들은 피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힘의 의미이다.
  미래에 적응하는 가장 확시한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함으로써 속박되지 않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적응과 창조의 차이다.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p110

'나는 변화를 원하는가?' 이런 질문은 무가치한 것이다. 단지 '변해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이 진정한 질문이다. -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질문은 대부분의 경우 답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떤 때는 오히려 답 이상으로 중요하다. 중요한 질문일수록 더욱 그렇다. 훌륭한 질문만이 훌륭한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변화는 어려운 것이고 불편한 것이며 미지의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을 박탈하는 것이다. 누가 변화 그 자체를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 변화를 원한다. 변화가 주는 더 큰 혜택을 믿을 수 잇는 경우에 그렇다. 따라서 의미있는 질문은, 변화가 주는 혜택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혜택을 얻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p111-112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갈등이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자 한다. 그것은 혼란과 혼동이다.그것은 마음의 균형을 깨트리고 내면적 평화를 위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이 해소되기를 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갈등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도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갈등은 사회적 산물이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갈등이 없는 부부가 있는가? 자식과 부모 사이가 늘 화평한가? 갈등이 없는 직장 생활이 있는가? 친구와 만나면 늘 즐겁게 웃기만 하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관계 속에 갈등이 존재한다면,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갈등은 우리의 일상이며, 그러므로 힘껏 껴안아야 할 핵심이다.
p112

신 에게는 모든 것은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은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은 옳다고 한다. ...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 헤라클레이투스(Heracleitus)

  번역가이며 작가인 이윤기는, 변화의 정도를 세 가지의 다른 용어로 번역하고 있다. 형태만 바뀌는 것은 변형(變形, transformation), 성질이 변하는 것을 변성(變性, transmutation), 그리고 본질이 바뀌는 것을 변역(變易, transubstantiation)이라고 구별한다.
  예를 들어 포도를 가지고 즙을 짜서 먹으면, 이는 변형이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성분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어 내면, 이것은 변성이다. 성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포도주를 먹고 취해 버리면, 이는 변역이다. 평소에 그가 가지고 있던 기능과 역할을 잊고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115

  나는 원래의 자기가 되는 것을 변역이라고 믿고 있다. 말하자면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발하며, 그 재능이 잘 적용될 수 있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에 몰입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변역의 인물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들은 성인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속에 자신을 세우는 법을 알고 있다. 위대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기가 되고 싶어한다. 그들은 사회적 틀과 기대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세계을 만들어 가며, 그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것이 변역의 의미이며, 변화의 궁극적 목표이다.
p117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존 F. 케네디의 말이다.
  이 말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불확실성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p118

..그러나 한 번 떠나면 되돌아올 수 없는 단호하고 근본적인 변화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다. 인생의 변곡점, 그 앞에서 우리가 늘 망설이고 회피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는 분명히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왜 그런가? 예측 가능하고 익숙한 일상에서부터 불확실한 '어딘가'로 우리를 몰고가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통제(control)' 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불확실성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는 것이 변화에 접근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변화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긍정적 변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변화와 관련하여 가능한 많은 정보를 모으고 해석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둘째는 그래도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불가피한 일상의 요소로 즐겁게 수용하는 마음의 전환이다. 
p118~119

  조직이건 개인이건 '학습'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변화가 수반하는 불확실성을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확실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도와 주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두려움은 줄어들게 된다. 통제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다 모을 수 없다. 해답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변화의 과정에서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한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두려움의 원천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는 심리적 전환이 중요한 것이다.
p120

  평범한 사람들이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3년 정도의 자기 계발 여정이 필요하다. 왜 3년일까? 참고 견딜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며, 성과를 낼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온갖 제약과 한계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적어도 우리는 몇 년의 시간적 격리를 필요로 한다. 3년 정도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입문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심리적 길이로 적합하다. 3년은 1,000일을 조금 넘는다. 1,000일 동안의 담금질을 통해 꽤 괜찮은 자기를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p121

소심한 영혼은 문을 열고 외부 세계로 나오는
재생을 경험하지 못한다.
- 조셉 켐벨(Joseph Campbell)

그대가 누구이든,
어느 날 저녁
집 밖으로, 그 익숙한 곳을 떠나, 한 걸음만 나서면,
바로 옆에 광대무변한 공간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갈 데가 없어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후회 속에서,
오래도록 닫혀진 문을 쳐다보며 아쉬워한다.
우리 앞에 또 하나의 문이 열려져 있는 것도 알지 못한 채.
- 헬렌 켈러( Helen Keller)

우리가 물리적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우리는 상징적 의식들을 통해 거듭난다. 의식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 묶여 있는 인간의 정신을 과거로부터 분리시켜 그 정신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p139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어딘가에서 굽이져 방향을 툴어 흐르게 된다. 그 곳을 지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한 것이다. 이 상징적 지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강력한 자기 암시를 해 주어야 한다.
  "나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나는 이 지점에서 과거와 작별한다. 과거와 이어지는 문을 닫고, 지금 막 미래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상징적 의식을 통하여 자신과의 새로운 만남을 선언하는 "나의 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날은 자신의 속에서 가장 자기다운 강점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나머지 인생을 자기답게 살겠다는 약속의 날이다.
p140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 동주 이용희가 남명 조식선생을 그리면서..

  ...여행은 그러나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나는 여행을 통해 20년 간 나를 지배해 온 관습을 버리려고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20년 만에 주어진 한 달 반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p145-145, 그리고 구본형의 4번째 책, <떠남과 만남>의 서문

  공자와 노자와 장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서로 보완하는 한 사람으로 인식될 때,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으로 들어와서도 자유롭다. 자유는 혹시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 들어와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
p148

  우리는 삶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아마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카뮈(Albert Camus)는 "미래를 향한 진정한 관용은 현재 존재하는 것에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만이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최선의 지금'이 곧 '최선의 미래'로 가는 길이다. 이것이 준비하는 사람의 자세이다. 바라는 미래는 지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마술처럼 나타나 당신을 기쁘게 해 주지 않는다.
p149

시간은 비밀이다. 실체가 없으면서 전지전능하다.
- 토마스 만(Thomas Mann)

  192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세를 받은 작가 중에 메리 로버츠 라인하르트(Mary R. Reinhart)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50권도 넘는 소설을 썼다. 메리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상황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그녀는 언젠가 글쓰기를 배워야겠다고 늘 생각해 왔지만, 아이가 셋이나 딸려 있었고,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가 계셨다. 자신을 위해 별도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럭저럭 살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경제적 위기가 닥쳐왔다. 그녀는 빚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글을 써서 푼돈이라도 좀 벌어 보고 싶었다. 낮 동안 틈틈이 시간을 내었고, 밤에 아이들이 잠든 후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썼다. 이상한 것은, 이러한 작업이 잡일에 지친 그녀를 더욱 피곤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의 생활은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왜냐하면 글쓰는 일은 그녀가 늘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확력을 준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잊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힘들고 피곤하다. 그저 고행일 뿐이다.
p154-155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잘못은, '지금' 자기가 원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정이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 역시 밝고 환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우리를 되돌아볼 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즐거운 일에 몰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삶과 일이 혼연일체가 되는 때가 가장 즐겁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내가 ㅎ나평생 일 분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 말도 맞고, 내가 단 하루도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한 적이 없다는 말도 옳다"고 표현한다. 일과 취마가 녹아있는 상태를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인 라이너스 폴링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지? 나는 이런 걱정을 한 적이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무작정 밀고 나갔을 뿐이다." 심리학자인 도날드 캠벨(D.T.Campbell)도 젊은 후학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명예가 주어지면 즐겁게 받을 일이지만, 그러나 여러분을 즐겁게 하는 것은 일 자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p155-156

  일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일하는 순간에는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일의 이중성 앞에서 우리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학생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본업인 공부는 일에 해당된다고 믿고 있다. 공부가 자신의 미래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자부심을 높여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부하는 동안에는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어른들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듯이.
  일과 여가는 서로를 그리워한다. 사람들이 가장 끔찍하게 느끼는 때는 일을 할 때가 아니다. 일도 아니고 놀이도 아닌 것을 할 때 가장 괴로워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평범한 유지 활동, 그렇고 그런 만남, 수동적 여가 활동일 때 지리하고 짜증나고 만족할 수 없다.
p158

  미할리(Mihaly Csikszentmihaly)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10대는 TV를 보는 동안 13%, 취미 활동을 할 때 34%, 운동이나 게임을 할 때는 44%가 몰입을 경험한다. 그런데도 이들 10대는 취미나 운동보다는 TV를 보는 데 4배나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왜 그럴까? 재미는 덜해도 편한 것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수동적 여가가 끼여드는 빌미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여가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기회이면서 벗어나기 힘든 함정이기도 하다. 여가는 일을 즐기기가 더 어렵다. 쉬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수동적 태도가 여가를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 될 때부터이다. 이런 태도가 습관이 되면 삶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p160

  늘 일정한 양의 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쏟기 위해서는 편안함은 금물이다. 매일 꾸준히 해서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한 적절한 집착이 중요하다. 모든 애정은 어느 정도의 집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돈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삶과 애정이 만들어 놓은 집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p164

  둘째, '자기 혁명의 지도'를 꺼내어, 최초 6개월 혹은 1년 동안 해야 할 일의 세부 계획서를 만들어라. 이것은 고생하여 얻어낸 하루 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낸 시간을 일관성 없는 일을 하느라고 낭비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p165

미천한 종, 나의 날은 끝났다.
.....
나 역시 불붙어 이름을 얻으니,
사슬 갑옷의 사제 바코스.
- 유리피데스

변혁의 시대에는
'배우려는 사람'들이 세상을 물려받게 되어 있다.
이미 배운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세상에
스스로 가장 적합하다고 착각하는 동안에...
-에릭 호퍼(Eric Hoffer)

다시 산다면 나는,
내가 될 수도 있었지만
한 번도 되어 보지 못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임종 전에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는 일을 돕기 위해 이 곳에 있다.
-우파니샤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업종이 따로 있지 않다. 그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아주 잘하면 전문가라 불릴 수 있다. 단순히 어떤 일을 오랫동안 했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현업에서 주어진 일을 그저 지루한 일과로 여기며 관성적으로 처리해서는 수십 년이 지나도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전문가는 늘 표면 뒤에 숨어 있는 것을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애정과 관심을 쏟지 않고는 이면에 숨은 암호와 신호를 파악하고 해석할 수 없다. 전문가는 별도로 궁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전문성을 찾아 특화하라. 아무리 좁은 영역에 국한된 것이라도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라. 일견 별 가치가 ㅇ벗어 보여도 전문화된 지식의 힘은 강력하다. 그 일에 관한 한, 당시을 찾아오게 만들어라.
p181-182

  그들이 선정한 가장 전문가다운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간판에 속는 대신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면 왜 명확하게 설명하고 제안할 수 없는가"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자신의 전문성을 명료하게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p184

  진정한 전문가로 받아들여지려면 그 전문성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음을 명심하라.
  첫째, 비전문가인 당신의 아내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 명료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는 해당 분야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핵심은 늘 간단하고 명쾌하다.
  둘째, 중학교에 다니는 당신의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라. 나는 전문 용어를 쓰는 사람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전문 용어의 남용은 그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거나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만이 전문 용어의 뒤로 숨고 싶어한다. 전문 용어를 남발하는 사람은 절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으며, 결국에는 당신 속을 뒤집어 놓을 뿐이다.
  셋째, 고객이 지금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철학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일반론으로 흐르면 현장 실무 경험이 없음을 증명할 뿐이다. 그러나 지엽에 얽매이면 전체의 균형을 잃게 된다. 철학은 멀리 보게 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게 한다. 철학은 장기적인 신뢰를 구축하게 해 주는 강력한 상품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p185-186

철학은 말로써 잘 표현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선택한 것으로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다.
무엇을 택하건, 결국 스스로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 엘리노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

상업주의와 순수한 문화 사이에도 균형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균형은 늘 움직이는 물체의 화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변화는 움직임이고 움직임에는 균형이라는 문제가 따른다.
p195

  인간은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재능을 타고났는지 잘 모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자신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도 많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되고 싶은 바로 그 사람이 아닐 때도 있다. 우리는 조사원들에게 말한 그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생각을 말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저 가장 그럴 듯한 답변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는 다르게 행동한다. 따라서 여론 조사 내용을 가지고 고객의 생각을 읽는다면, 매우 제한적인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p197-198

  우리는 자신이 체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을 체험한다. 기대한 것보다 못하면 실망하고, 그보다 좋으면 만족해 한다. 고객의 만족은 객관적 진실보다는 주관적 기대에 좌우된다. 따라서 당신이 열정을 가지고 그렇게 믿게 하면 정말 그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고객은 당신에게 반하게 된다. 이것이 고객 관계의 요체이다.
p200

21세기의 트렌드 ( 페이스 팝콘, '클릭, 미래 속으로' 17개 중에서...)
코쿠닝(Cocooning) 트렌드 - 나의 안식처를 벗어나기 싫다
작은 사치 트렌드 - 때로는 부자처럼 산다
여성적 사고 트렌드 - 여성적 감수성이 세상을 바꾼다
소비자 감시 트렌드 - 기업은 소비자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p209

첫 째, 당신을 선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알려라.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고 하지 마라. 왜냐하면 이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 브랜드는 시장에서 불리는 당신의 가치를 의미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모든 사람이 고객일 수 없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좋은 고객에게 쏟을 수 있는 정력을 호객을 하는 데 낭비해서는 안된다.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는 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역시나'로 끝난다는 것을 명심하라. 소설 속의 우연을 기대하지 마라. 우연을 필연적으로 낚으려고 하지 마라. 우연은 우연일 뿐이다.
  그러면 당신을 선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친한 사람? 그럴 수도 있다. 그들은 분명히 도와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당신의 정신적 친구로 사귀는 것이 좋다. 사회 생활에서는 '오히려 약한 유대 관계'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친하지만 무심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p126
둘째, 모든 약한 고리가 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아니다. 커넥터(connector)의 역할을 즐기는 살마을 반드시 찾아내라. 커넥터란 '모든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p217
셋째, 커넥터만이 사회 속에 당신의 브랜드를 전파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바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즉 지식을 축적한 사람 역시 당신을 도와 준다. 경제학자들은 이들을 "메이븐(Maven)"이라고 부른다.
p218


...그러나 그 브랜드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다음 세 가지를 포함하는 것이 지식 사회의 특성에 맞다는 점을 유념하라.
  첫째는 '전문성'이고, 둘째는 '개혁과 창의성'이며 셋째는 '좋은 이웃'이다. 따라서 당신의 브랜드가 어떤 분야의 어떤 이름이든, 이 세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상승의 기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떠오를 수 없다.
p223

누 구나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감정적으로 살아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재미있을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건, 인생이 가능성으로 차있던 작은 기쁨의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 때를 이야기할 때 흥분하고 눈을 빛내며, 얼굴은 생기로 반짝인다. 마음이 열리는 순간들이다.
  무엇을 팔려고 해서는 안 된다. 최고의 세일즈맨은 판매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것을 파는 것이 아니다. 최고를 살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결정은 늘 고객이 한다. 고객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객 관계의 요체'이다.
  늘 잊고 지내는 것이지만, '한 번의 거래'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남성적 사고의 전형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더 이상 비지니스를 경쟁을 물리치고 꼭 이겨야 하는 전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비지니스는 이제 한 가지씩 그 관계의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복잡한 모자이크이다. 여성적으로 생각하라. 남에게 손을 내밀고 다른 사람의 손이 뻗쳐 오도록 하는 것이 바로 좋은 이웃 관계이며, 고객 관계의 기초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브랜드는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이것은 거짓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는 과장된 광고를 통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언어의 유희여서도 안 된다. 브랜드는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려는 그 약속 그대로 진실이어야 한다. 문화와 정신이 들어 있지 않은 상품은 시장을 장악할 수 없다. 상품이 담겨 있는 상자 이상의 무엇인가를 전해 주지 못하고는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p226-227

"어떤 사람에게나 높은 파도를 타는 듯한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 강한 힘에 이끌려 파도에 올라탄 후기세 좋게 미끄러져 갑니다.
그 때는 멈출 수 없습니다. 사람이 빛나 보이는 때는 바로 이런 때입니다."
- 남부 야스유끼

  빛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열중하는 것이다. 열중할 수 없다면 그 일은 자기 일이 아니다. 푸른 하늘로 던져 올려지는 그 통쾌한 전율이 없다면,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 자신과 우정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결국 다른 사람이 규정하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다. 규정 당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다.
  살면서 그런 열중의 순간이 찾아오면,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 때를 놓치면 다시는 운명과 만날 수 없다. 그 때 그 순간이 자신의 운명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을 그대로 흘려 보내는 사람에게는 '지금'이란 없다. 그저 '다음'이 있을 뿐이다. 현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현실이 없다. 따라서 그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현실이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한다. 아니다. 잘못된 말이다. 지금 열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p235-236
posted by progh2
2007. 6. 7. 11:53
리눅스가 표방하는 오픈 소스의 철학은 간단했다.
-모든 정보(이 경우엔 운영체제의 소스 코드 혹은 기본 명령어를 말한다)는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제공된 정보를 향상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든 그것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향상된 정보 또한 무료로 배포되어야 한다.
머리말

삶 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는 삶의 몯느 것을 위한 자극 요소들이지요.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생물이 하는 모든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라고 보면 됩니다. 그 첫번째는 '생존(survival)'이고, 두번째는 '사회조직(social order)', 세번째는 '오락(entertainment)'입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진보는 방금 말한 순서대로 진행된다고 보면 됩니다. 오락 다음엔 아무것도 없지요. 그러니까 결국 어떤 면에서 보면, 삶의 의미란 곧 세번째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세번째 단계에 도달하면, 할 일은 다 한 거지요. 하지만 첫번째, 두번째를 건너뛰고 세번째 단계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p18

그러니까, 만약 삶이란 게 모두 그러한 진행에 대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삶의 목표는 당연히 그러한 진행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되겠지요. 여기서 말하는 진행은 하나의 단일 진행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많은 진행의 부분이 되는 거지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자문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회의 일원이니까요. 사회는 분명 아까 얘기한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가 그 방향으로 우너활하게 나아가도록 이바지할 수 있겠지요.
p24

사람에 따라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다르다. 자신이 몰았던 차를 가지고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사했던 일, 살았던 장소, 사귀엇던 사람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컴퓨터로 과거의 시간을 기억한다.
p73

우수한 게임이란 뛰어난 스피드에, 뛰어난 그래픽만 갖춘 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게임을 하도록 만드는 '무엇', 한번 시작하면 손을 뗄 수 없게 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중략) 하지만 게임에 있어서 '진보'는 스피드 향상으로만 귀결되곤 한다. 팩맨에서처럼 말이다. 때때로 미로를 변형시키고, 게임 플레이어를 더 빨리 따라오는 괴물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p85

사 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책 한 권 정도는 지니고 있다. [성경], [자본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등등 말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삶의 의미에 대한 나의 철학이 담긴 이 책을 읽는 것이 당신의 삶에 보탬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책은 앤드류 타넨바움의 [운영체제 : 디자인 및 실행] 이었다.
(중략)
책을 읽으며 차츰 유닉스를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커다란 열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솔직히, 한번 일기 시작한 그 열정은 그 이후 잦아들 줄을 몰랐다. ( 이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당신에게도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p92

간 편한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함'이 절대적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인가를 설계할 때는 '단순함'이 가미되어야만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탄생할 수 있다. 다시 인간의 언어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어 같은 상형문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단순화' 되는 반면, 구성요소 접근방식은 훨씬 더 추상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유닉스의 단순함을 정교함의 부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단순하기에 정교해질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유닉스가 기본적으로 정교한 무엇인가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컴퓨터의 많은 다른 프로그램들처럼, 유닉스는 게임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었다. PDP-11에서 우주전쟁 게임을 즈릭고 싶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데니스와 켄이 처음 유닉스 개발에 착수했던 것이다.
p97

나는 그 성과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
사라는 나의 개인적인 이 위대한 성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그녀가 약 5초 동안 AAAAAA과 BBBBBBBB만이 가득한 스크린을 보더니 말했다. "좋은데." 그리고는 끝이었다. 그녀는 나의 이 새로운 업적에 별 감동을 받지 않았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뒤에 자리하고 있는 이 엄청난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이에게 내가 거둔 성과는 타르로 도로를 가득 메운 뒤, 그 도로를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p107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세상을 창조하는 것을 가로막는 유일한 방해물은 컴퓨터의 성능과 (컴퓨터의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됨에 따라 점점 비중이 커지고 있는) 컴퓨터 사용자의 조작 능력일 뿐이다.
p121

컴퓨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닐 때까지 맹목적으로 문제에 매달릴 수도 있고, 나름대로 적합한 접근방식을 찾아내어 갑자기 문제가 사라지도록 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규칙에 연연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당신이 '잘못된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깨달음 말이다.
p124

일 반적으로 말해, 나는 두 가지 입장에서 저작권을 바라본다. 만약 월 수입이 50달러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과연 250달러짜리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이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5개월 생활비를 털어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저작권 침해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있는 저작권 침해자를 뒤쫓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비도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리눅스에 있어, 자신이 사용할 의도에서 GPL을 어겨가며 리눅스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누군가 간단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생각에서 리눅스를 이용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 사람이 미국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돈을 벌기 위해 마음대로 리눅스를 훔치는 것은 정도가 어떻든간에, 분명 비도덕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탐욕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p154

사 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잠자고, 식사하고, 학교 가고, 코드 개발하고, 수많은 이메일을 읽는 것이 내게는 생활이었다. 물론 주변의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다양한 사생활을 즐기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나름대로 내 생활을 즐겼다.
  솔직히 나의 친구들 역시 대부분이 패배자였다.
p183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잠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베개라도 던지고 싶다. 잠이 중요하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아주 완벽한 근거가 있으며, 나는 전적으로 그 근거를 지지한다. 만약 하루에 열 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다면, 생산적인 시간인 낮 시간을 몇 시간 정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깨어 있는 몇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에 당신은 맑은 정신으로 일할 수 잇고, 당신의 머리는 완전히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p220

언론은 리눅스 사용자 간에 이상주의자와 실용주의자(물론 나의 용어는 아니다!)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조장했다. 그러한 이분법적 논리대로라면, 리눅스의 이상이 자본주의 목표와 양립할 수 없음을 두려워한 스톨먼과 몇몇 사람들은 이상주의 지지파이고, 나는 실용주의 지지파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이분법을 언론이 조장한,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나누려는 극단적인 논리라고 생각했다.(그것은 리눅스 현상을 리눅스 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쟁으로 파악하려는 견해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리눅스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 훨씬 더 폭럽은 '그 무엇'이다. 즉 기술과 지식, 부, 재미를 상업 세계에서 가장 유기적인 방법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p241-242

어쨌든 나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오픈 소스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재미'였다. 재미는 즐기는 방편으로서 오픈 소스를 생각했으니, 분명 이상주의적인 견해는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항상 이상주의자들을 재미있지만 다소 따분하고, 가끔씩은 무서운 사람들로 생각한다.
p243

이제 나의 황금률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첫 째는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해주길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어라."이다. 그 법칙을 따른다면,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항상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라."이고, 셋째는 "재밌게 하라."이다.
p261

나 는 사람들이 나를 전화나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 모두에게 응답하는 것을 즐기는 호인으로 생각하길 바란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잣대로 삼고, 나를 돈에 무관심한 이타적인 수도승이나 성자로 판단하는 게 이상하다. 나는 그 신화를 깨기 위해 몇 년 동안이나 애썼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활자화된 적은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언론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타적인 수도승의 이미지를 항상 혐오해 왔다. 그것은 참신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도 따분한 이미지일 뿐이다. 게다가 그것은 진실도 아니다.
p274

사 람들은 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많은 것들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리눅스 뚜껑의 장신구로서 몇 년을 보내면서 배운 교훈이 하나 있다면 , 더 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강박을 기필코 확신시켜야만 만족한다.
  이런 사람들은 실로 내 삶에서 가장 짜능나는 대상 가운데 하나다.
p277

그 런데, 그들은 왜 뜻이 통하는 자기들끼리 노는 데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누구든 자기 견해를 타인에게 개진할 수는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자기 견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면 그로서는 할 일 다한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사람들이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경우다. 나는 내 개인적 결정에 이런저런 강요나 간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실로 경멸한다. (아마 아내는 예외가 될 것 같다.)
p282


풍차와 싸우는 건 쉬운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는 말이다.
p290

예를 들면, 저작권 소유자는 단지 그것을 파는 것보다 훨씬 재미난 일들을 벌일 수 있다. 라이센스를 내주는 게 그 중 하나다. 저작권에 대한 라이선스를 내주는 게 저작권을 파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다. 작품을 파는 대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떤 일을 하도록 허가만 내주고(그것에 대한) 저작권은 여전히 소유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꿩 먹고 알 먹고'가 바로 이 런 경우다. 잃는 것 하나 없이 뭔가를 사용할 권리를 끊임없이 판다?! 우와! 그래서 이 땅에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재산권을 소유하길 '갈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 이제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는가? 아직도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에게 오라. 내가 다리 하나 지어놓고 강가의 경치를 감상하는 라이선스를 팔 테니..
  지적재산권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소유자는 실질적으로 어떤 것도 잃지 않고 그것을 영원히 효과적으로 팔 수 있다.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도 없고, 사실 작품에 어떤 하자가 있을질라도 그것에 책임지지 않는 방법으로 라이선스를 내줄 수도 있따. 라이선스 계약 시 그저 몇 줄 명시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정말 뭘 모르시는구먼. 게다가 소비자 보호 문제 따윈 안중에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저작권 소유자는 잃는 것 없이 그의 재산을 팔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재산처럼 보이는 것을 파는 사람들까지 고소할 권리가 있다. 분명 저작권 소유자는 (그의 창작물에 대해서뿐 아니라) 파생된 작업물에 대한 권리까지 소유한다.
p298-299

성공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게 아니다.
문 제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너무 탐욕에 끌려다닌다는 점이다. 그런 탐욕은 언제나 궁극적으로 실패를 안겨다준다. 탐욕에 이끌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개 편집증 환자처럼 모든 걸 다 통제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결정은 근시안적인 데다가 해롭고, 거의 언제나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p308

생존이 어느 정도 보장된 사회에서 돈은 가장 큰 동기부여 요인이 아니다.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할 때, 즉 일을 즐길 때, 가장 그 일을 잘 해낸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얘기이다. 이는 작가와 예술가, 연예인, 엔지니어 등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오픈소스 모델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 속에서 열정을 행동에 옮길 기회를 주었다. 회사가 고용한 몇몇 사람들이 아닌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일하며 재미도 볼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길 원한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의욕을 북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p324

기 술은 기술이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지금까지는 본질적으로 그리 대단한 게 못된다. 기술은 단지 그것을 갖고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흥미로운 대상일 뿐이다. 뒤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인간의 필요와 관심이라는 얘기다. 오늘날 우리는 통신 수단이 있기 때문에 통신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래 수다스럽고 서로 의사를 소통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통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단이 없다면 만들어낼 것이다. 노키아는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내 주장은 이렇다. 사회가 어디로 진화해 갈 것인지 이해하려면 무엇이 진정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돈? 성공? 아니면 섹스? 근보적으로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일까?
(중략)
  그리고 그게 다다. 생존, 사회적 질서 내에서의 위치, 그리고 오락, 이 세가지가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인 것이다. 기타 다른 것들은 모두 사회학자들이 출현행동이라 부르는 것들로, 위의 간단한 규칙들에서 파생되어 나타나는 행동유형들이다.
  하지만 난  "이것들이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입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끝내지 않겠다. 만약 여기서 끝난다면 특별히 삶의 이론이라 할 것도 없다. 이것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세가지 요인이 모두 보편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고, 그 질서는 삶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발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단지 우리 인간만 이 세 가지에 의해서 동기를 갖는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도 적용되고, 생성과 발전, 소멸 과정을 가지는 어떤 종류의 행동 양식에든 자연적 진보 과정으로 나타난다.
  생존하라, 사회하하라, 즐겨라.
  그것이 진보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재미로"를 이 책의 제목으로 택한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충분히 진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우리의 즐거움을 위한 게 된다.
p344-346
posted by prog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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